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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2주기]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에 있는가?

보라돌이입니다 2016. 4. 16.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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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창문을 때린다. 세월호 2주기. 아픔과 절망의 날이다. 세월호는 우리 국민 대다수에게 슬픔을 안겨주었다. 두려움과 절망도 주었다. 나라의 시스템이 우리 삶을 구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 그리고 비극을 당한 사람들이 무관심한 혹은 무자비한 사회 앞에서 느끼는 절망. 



많은 것을 시사한 세월호 사건


세월호 유가족 중에는 기독인들도 많이 있다. 교회에서 집사, 권사, 장로 직분을 가진 이들도 많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해 온 사람들도 많다. 예수를 믿는 이들. 이들에게는 지금 하나의 짐이 더 지워져 있다. 바로 교회다. 교회가 짐이다. 잊으라, 표현하지 말라, 그냥 살아가라 말하는 교회와 주변의 신자들은 이들에게는 크나큰 고통의 짐이다. 잊을 수 없고, 표현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고, 그냥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큰 상처를 받은 이들이다. 그렇기에 그럴 수는 없다. 


'뉴스앤조이'는 세월호 2주기를 맞아 유가족들을 인터뷰한 기사들을 내놓고 있다. 이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대부분 기독인이다. 이 고통속에 잠긴 기독인들은 하나같이 교회와 하나님께 대한 의문과 아쉬움이 있다. 특히 하나님보다는 교회와 교인들과 교회의 행태에 대한 아쉬움과 설움이 크다. 




<한국교회  생각할수록  창피한  광화문  집사님>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8890


이 기사에 등장한 조미선씨는 '하나님의 영광'만 말하는 교회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교회와 교인들이 아픔과 고통에는 무지, 무감각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떠들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은 대체 무엇일까? 그것이 무엇이기에 비극을 당한 사람들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이가 바로 예수님이다. 이것은 기독인이라면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예수님이 어떻게, 어디에 태어나셨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낮고 낮은 곳, 평범하기 그지없는 인생들 속에 예수님은 태어나셨고, 자라셨다. 저 큰 헤롯의 성전에 나시지 않았다. 그분이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예수님이 왜 낮고 평범한 이들에게, 우리에게 오셨는지 생각해 본다. 그것은 우리가 낮고 작기 때문이다. 크고 높은 곳에는 이미 크고 높은 자들의 영광이 가득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가지 못한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들의 영광을 높이지 않는 이들에게 가셔서, 더 크고 더 높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것이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부자에게 말한다. '네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누가복음 16: 25. 새번역) 예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어 하셨다. 자기 자신의 영광에 취해 사는 이들에게 경고하고 싶어 하셨다. 



오늘 광화문에서는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한 문화제가 열린다


하나님의 영광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은 교회당에 있지 않다. 하나님의 영광은 광화문에, 안산에, 단원고에, 그리고 저 바다에 깊이 잠겨있는 커다란 여객선 속에 있다. 기독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싶다면,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보고 느끼고 싶다면,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고 싶다면, 교회만 다녀서는 안 된다. 그곳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그곳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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