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기/정치, 시사

강남역 묻지마 살인을 대하는 태도

보라돌이입니다 2016. 5. 19.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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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화장실 묻지마 살인사건'이 큰 이슈를 던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이미 문제가 되고 있던 남녀 네티즌 사이의 갈등이 그것입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폭력 전과와 조현병이 있는 어떤 남성이, '여자들이 나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여러 시간을 기다린 끝에 일면식도 없는 어느 20대 여성을 흉기로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입니다. 이 여성에 대한 추모, 그리고 묻지마 범죄에 대한 공포가 급속히 퍼져 가고 있습니다. 


출처: 뉴시스


그런데, 여기에서 반응이 엇갈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여성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 쪽에서는, 이 사건이 '여성 혐오 범죄'라는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물리적/사회문화적 약자인 여성이기 때문에 범죄의 타겟이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이 사건은 폭력 전과와 정신병이 있는 이의 일탈행위로 봅니다. 범인이 '정신병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폭력성을 이미 드러낸 바 있는 전과자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문제 있는 개인의 범죄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사회문화 전체의 여성혐오 문제로 보아야 하는지는 당장 판단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제가 주목한 부분은 이 사건을 대하는, 그리고 사건에 대해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기사 댓들 등으로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여성들은 '여자라서 살해당했다', '여자들은 여자라서 죽는데, 남자라서 죽은 사람은 0명이다' 등의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반면 남성들은 '남성들은 잠재적 가해자로 몰리고 있다', '남자라서 죽은 사람이 없다니, 군대에서 죽은 사람들은 다 남자가 아닌 모양' 이라는 반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저명한 인지언어학의 대가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언어가 어떻게 '프레임'을 형성하는지, 그리고 그 프레임이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정치적 진보자들이 상대, 즉 시민을 설득하는 데 있어 자기 언어로만 말한다고 주장합니다. 진보가 선거에서 이기려면 진보적 시민들 뿐 아니라 중도, 보수적 시민들을 아울러야 하지만, 진보 정치인들이 그것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진보 정치인들이 중도, 보수의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오직 자신들의 언어로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조지 레이코프의 주장입니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을 대하는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의 언어는? 우리가 쓰는 블로그, 트윗, 댓글, 타임라인은? 우리의 언어가 과연 상대를 설득할 수 있을까요? '한남충'과 '메갈녀'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주장하고 설득하기를 포기하고, 그저 분노와 냉소를 쏟아내고 있지는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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