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없는 책


지난 9월에 홍대에서는 와우북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당시 저는 페스티벌이 열리는 홍대앞길에서 하루를 온 종일 다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러 다양한 출판사들의 부스를 지나자, 출판사의 부스가 아닌 부스들이 상상마당과 상수역 사이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독립출판물들을 위한 부스였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독립출판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상업적인 이유를 넘어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입니다. 와우북페에서 만난 많은 독립출판물들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만난 이야기 중 저의 흥미를 끄는 것이 바로 이 책, ‘주무관 일기였습니다

 


일기란 그런 것


책의 저자 도영 20대의 여성 공무원입니다. 이 책은 그녀가 공무원이 되기 전부터 공무원이 된 이후 몇 년간의 이야기입니다. 소설같은 하나의 긴 이야기는 아니고, 책의 제목처럼 일기 형식입니다. 저자가 겪은 일들, 만난 사람들, 생각한 것들에 대한 정직한 이야기입니다.

. 이것은 정직한 이야기입니다. 저자의 이야기, 저자의 생각입니다. 곰곰 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는 매우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보통 공무원을 생각할 때, 공무원이라면 공익을 우선해야 하고 친절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땅히 그런 사람이 공무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시간, 자기 업무, 자기 마음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


공무원이라는 이름을 생각할 때, 저자는 좋은 공무원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좋은 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누군가에게 자기를 뽐내거나 과장하거나 좋은 평을 받고 싶어서 쓴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일기입니다. 자기 이야기입니다. 그냥 20대 중반을 사는 한 사람이 쓴 자기 자신입니다. 그렇게 생각할 때, 글쎄요, 누가 이 사람을 단순히 공무원답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20대 후반을 사는 저는 저자의 마음, 저자의 생각, 저자의 삶의 태도를 긍정하기는 어려우나, 있는 그대로 그냥 인정할 수는 있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이 책이 보여주는 삶의 형태와 태도는 그야말로 우리 20대의 일기, 20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하나쯤 있을 법한 사람

 

주변에 이런 사람, 하나쯤 있을 듯합니다. 사람은 착한데 왠지 모르게 뻣뻣해서 인간관계를 유들유들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 주변의 분위기를 잘 읽지 못하고 때문에 놀림감이 되곤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어쩌면 놀림감을 넘어서 따돌림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낯선 환경에서라면 적응하지 못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 바로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입니다. 주인공은 몰락해가는 구 일본 귀족의 둘째 아들입니다. 하녀인 기요 할멈으로부터 도련님소리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의 성격은 매우 특이합니다. 그는 성격이 매우 강하지만 그 강한 성격을 숨기거나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할 뿐입니다.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으로 찬 사람입니다.

 

도련님에서 사회인으로

 

부모가 죽고, 원래 사이가 좋지 않던 형과 갈라지면서 그는 독립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부모의 유산으로 어찌어찌 학교를 졸업한 그는 동경에서 먼 시골 중학교로 갑니다. 기요 할멈과도 작별합니다. 부임지에 도착한 그는 일하게 된 학교에서 뭔가 이상함을 느낍니다. 학교의 선생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이상해 보이고, 학생들은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여러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그는 그의 느낌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도련님은 동료 수학교사 센바람선생과 손잡고, 일련의 사건을 뒤에서 조장한 위선적인 교감 빨간 셔츠아첨꾼인 미술 선생을 혼내줍니다.

 

해학적인 인물들 뒤에 숨은 혼란

 

도련님은 강직하고 정직합니다. 그렇기에 위선적인 교감과 아첨꾼 미술 선생을 가만히 두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한번 때려주는 일 뿐입니다. 그가 비록 매우 유서 깊은 사무라이 가문의 자제일지라도 말입니다. 이전의 일본 사회였다면 도련님이 교감과 아첨꾼을 칼로 베었다 할지라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겠지만, 도련님이 사는 세계는 더 이상 봉건 사회가 아닙니다. 도련님을 괴롭힐 뿐 아니라 이전에 사족(귀족)이었던 끝물 호박선생의 약혼녀를 빼앗고, 또 뒤로는 게이샤와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교감 선생인 시대입니다. 약삭빠르고 겉과 속이 다른 이들이 잘 나가는 사회. 아무리 강직하고, 아무리 정직하고, 아무리 성인 군자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사회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쓰메 소세키)


이렇듯 나쓰메 소세키는 당시 새로운일본 사회를 해학적이고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가볍게 보자면 그냥 재미있는 한 사람의 이야기인 도련님’. 한 꺼풀만 더 들어가 보자, 그 안에는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사회 변화의 단면이 있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보노보노? 그게 뭐야?



 

좆같은 보노보노라는 것이 한때 유명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대학 수업 발표 PPT에 해달 캐릭터인 보노보노를 배경으로 쓴, 너무 못 만든 발표물이 인터넷에 공개되어 이상한 인기를 끈 것입니다.

보노보노는 1986년부터 연재되기 시작해 현재까지 인기가 있는 만화입니다. 아기 해달 보노보노는 이 만화 보노보노의 주인공이죠. 보노보노, 그리고 그 친구들인 무뚝뚝한 너구리 너부리, 분홍색 다람쥐 포로리가 숲 속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이 만화의 주 내용입니다. 어찌 보면 아무 내용도, 아무 자극적인 이야기도 없는 만화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에서도 큰 사랑을 지금까지도 받고 있습니다. 이 만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역시 철학적인 내용, 삶에 대한 고민, 무겁기만 한 일상의 고민들을 정직하고 편안한 이야기로 풀어 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보노보노의 생각, 보노보노에 대한 생각

 

보노보노는 늘 고민하고 생각합니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수많은 고민들을 합니다. 고민만 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저런 친구들과, 아빠와, 숲 속 동물들과 놀고 이야기하고 다투고 여행하고이런 삶의 모든 부분이 보노보노에게는 모두 어떤 느낌과 깨달음을 주는 것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노보노를 좋아하는 이유는, 이런 고민, 생각, 느낌, 깨달음이 우리의 일상에 주는 인사이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상은 생각보다 고됩니다. 이 고된 일상에서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보노보노는 주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솔직하게 사는 방법, 친구를 진심으로 아끼는 방법,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대하는 방법 등입니다.

 

우리 삶이 보노보노같았으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작가 김신회씨가 보노보노를 보고 쓴 에세이입니다. 작가는 이런저런 일상의 모습들을 마주할 때마다 자기가 사랑하는 만화 보노보노의 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자신과 같은 고민, 같은 마음을 가진 보노보노가 생각납니다. 그렇게 장면 장면을 자신의 생활에 대응시켜 웃음짓기도 하고, 아기 해달 보노보노와 친구들이 어쩌면 자기 삶의 모습보다 정직하게, 풍성하게,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음에 감탄합니다. 삶의 순간순간을 보노보노처럼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모습과 나의 삶을 가만히 비겨보면, 보노보노가 얼마나 제대로 고민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고민들은 아파트 평수, 자동차 배기량, 은행 잔고 같은 것들입니다. (자우림-‘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가사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보노보노의 고민은 다릅니다. 친구와 함께하는 법,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방법, 나 자신 앞에서 당당해지는 방법과 같은 것들이 보노보노의 고민거리입니다. 작가는 이런 보노보노를 사랑하고, 그처럼 살고자 합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작가는 말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보노보노처럼 사는 것이 참 좋다고, 그러니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