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잘 가던 홍대 이춘복참치가 없어졌더군요. 그래서 새로 참치집을 발굴했습니다. 오늘 갔던 서교참치가 그 곳입니다. 




서교참치는 홍대입구역 9번출구에서 VDL 매장을 지나서 마포평생학습관 방향으로 가다가 마지막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습니다. 차로는 가기 어려운 골목에 있으니 꼭 걸어서 가시길 추천해요. 


매장 안 사진을 못 찍었네요. 매장은 작고 소소하지만 예쁘게 꾸며져 있습니다. 다찌 자리가 열 석 정도 있고, 테이블 자리도 열 석 정도 있습니다. 가게에는 유명한 팝과 익숙한 가요들이 흘러나와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해 줍니다. 



저는 1인당 3만8천원짜리 특스페셜을 먹었습니다. 우선 쌀죽으로 입맛을 돋우고 속을 달랩니다. 



밑반찬 구성은 새우장, 회무침, 백김치, 단무지, 생강절임, 락교, 무순, 그리고 사진에 나오지 않은 콘치즈, 김, 튀김, 초밥 4조각이 있습니다. 회무침은 약간 간이 세고 짠 편입니다. 하지만 그 외 장국과 다른 밑반찬들은 참치와 먹기 딱 좋은 약간 심심한 맛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참치! 참치는 너무 얼거나 딱딱하지 않은 딱 먹기 좋은 상태로 나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정말 맛있습니다. 참치를 먹다보면 속이 약간 허하거나 차가워지는 느낌을 받는데, 그럴 때 마지막으로 우동이 나옵니다. 사진은 찍지 못했네요. 따듯한 국물로 속을 달래면 한 끼 잘 먹었다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홍대에서 맛있는 참치 먹고 싶으신 분들이나, 소소하게 친구와 저녁에 술 한 잔 기울이고 싶은 분들이라면, 서교참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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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서교동 345-26 2층 | 서교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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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체는 늘 똑같지만 스토리텔링 하나는 기가막히는 일본의 천재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 그의 작품들은 모두 뛰어나고 재미있지만, 그 중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은 단연 몬스터입니다.

 

독일이 아직 통일되지 않은 80년대, 서독 뒤셀도르프에 유학 온 일본인 뇌외과의사 덴마는 자신이 속한 병원의 원장 딸과 교제하며 잘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동독에서 망명한 외교관의 집에서 총격사건이 일어나 외교관 부부는 죽고 쌍둥이 남매 중 남자아이의 뇌에 총을 맞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덴마가 아이를 수술하게 되지만, 병원장은 그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뒤셀도르프 시장의 수술을 덴마에게 주문합니다.


 

그러나 덴마는 인간의 생명은 평등하다면서 먼저 온 아이의 수술을 진행하고, 아이는 살고 시장은 죽게 됩니다. 그 결과 잘 나가던 덴마는 원장의 총애에서 멀어지고, 원장 딸과도 헤어지게 됩니다. 덴마는 자신이 살려 두었지만 아직 깨어나지 않은 아이의 병상에서 나를 괴롭히는 그런 놈들은 죽는게 낫다고 하게 되고, 그 다음 날, 원장과 원장의 수족으로 일하던 의사들이 돌연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쌍둥이는 종적을 감춥니다.

 

10년 후, 병원의 외과 과장이 된 덴마는 중년부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아돌프 융켈스를 치료하게 되고, 그에게서 몬스터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고 융켈스가 갑자기 사라진 날, 융켈스를 찾기 위해 찾아간 폐건물에서 몬스터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이 10년전 치료했던 그 아이, 요한이었습니다.

 

사실 요한의 정체는 동독의 아동 실험실 ‘511 킨더하임에서 키워낸 실험대상이었습니다. 그곳은 아이들에게 다양한 인격 실험을 자행하던 곳이었습니다. 511 킨더하임 출신 아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진짜 이름을 포함한 자기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진짜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그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그런 요한은 세상이 너무나도 황량하고 허무하다고 생각하죠. 세상은 어둡고, 앞으로도 더 어두워질 것이기에 그는 모두 죽이고 자신도 죽는 것을 원합니다. 요한 자신을 아는 이들을 모두 죽이고 자기 자신도 누군가의 손에 죽는 것, 요한을 죽인 이는 요한의 존재를 말하겠지만 요한을 아는 이들은 모두 죽었기에 그 역시 외롭고 고독한 삶을 살다 죽는 것. 그것이 요한이 바란 완벽한 자살입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라는 존재는 내가 결정하는 존재일까요? 만일 내 곁에 아무도 없다면,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어떨까요? 내가 나는 이런 사람이야!’ 라고 할 때, 그 주변에 누군가 그렇구나하는 이가 없다면 어떨까요? 그럴 때도 나는 나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라는 사람을 결정해주는 존재는, 내 곁에 있는 이들이 아닐까요? 나를 무조건 긍정해주는 사람들만 만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데에는, 정의하는 데에는 나 한 사람만 있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과연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힘들어하고, 무엇이 나를 구성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면, 나 자신에게 깊이 침잠하기보다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서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는게 어떨까요?



삼전도의 굴욕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병자호란. 그 병자호란을 주제로 한 소설 남한산성’. 후금의 장군 용골대가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자, 조선의 왕 인조와 신료들은 얼어붙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을 합니다. 말이 항전이지, 성벽을 끼고 거의 버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남한산성에서 왕을 둘러싼 신료들은 말을 하기 바쁩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왕의 명령을 성 밖으로 전하려 나선 대장장이에게는 천한 것이라고 하며 그가 공을 세울까 두려워합니다.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은 오랑캐와 화친을 주장한다며 죽이려 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다양한 헛소리를 내놓습니다. 버티면 이긴다, 습격을 통해 이길 수 있다, 금수와 같은 여진족들에게는 예법으로 이긴다, 이런 소리들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들과 정 반대의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결국 조선은 청에 굴복하게 됩니다. 청의 황제에게 우리 임금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조아리는 신하의 예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말이 번지르르하던 수많은 신하들은 각자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말들을 자아냈습니다. 그 수많은 말의 잔치에서 물러나 있던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삼학사는 척화파를 대표해서 청으로 잡혀가버렸습니다. 김류 등 진짜 말만 많던 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주변의 상황과 환경이 변하면 정치인의 말과 행동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정지인들에게 일종의 신조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주변의 상황과 환경이란 무엇일까요? 이들이 말하는 환경과 상황의 변화란 결국 정치인 자신의 유불리 라고 생각합니다. 조건이 유리해지면 이렇게 말하고, 불리해지면 말을 바꾸는, 그리고 그런 정치인의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말이 바로 이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자기 유불리대로 말을 바꾸는 사람을 우리는 기회주의자, 사기꾼등으로 부릅니다. 정치인이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지 않나 합니다.


정치는 과연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처신을 바꾸는 기술을 의미할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쏟아놓고 정작 책임져야 할 때 없어져버리는 남한산성의 신료들은 정치인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말과 소신에 책임을 지는 삼학사를 닮은 이들이 진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정치 세태에서 책임 있는 진짜 정치인을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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