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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눈물을 마시는 새 – 한국 판타지의 아성

보라돌이입니다 2022. 8. 30.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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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또래 젊은 남자들은 판타지와 무협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과 비교하면 저는 판타지나 무협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고 오히려 임꺽정, 장길산, 태백산맥 등 대하소설을 좋아했습니다. 대하소설에서 제가 느낀 것은 ‘장대한 이야기의 웅장함‘이었습니다. 커다란 세계가 주인공과 등장인물들로 인해 용틀임하듯 묵직하게 움직이는 이야기를 읽는 것은 가슴을 울리기 충분했습니다. 이에 비해서 판타지, 특히 ‘양판소’라고 불리는 다 똑같이 생긴 판타지 소설들은 영 울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판타지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저는 이영도 작가의 책을 이번에 소개할 책, ‘눈물을 마시는 새‘로 처음 만났습니다. 이 책의 IP를 활용한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관심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를 읽고 든 생각은, 이 소설은 어떤 대하소설에도 견줄 만 한 묵직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저는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웅장한 이야기


이 이야기는 한 대륙 전체의 운명을 건 네 남자의 여행, 그리고 그들이 불러온 거대한 전쟁 이야기입니다.

대륙 남부에 사는 나가 종족의 륜 페이는 나가의 성인식 ‘심장적출식’에 대한 공포로 숨어 있던 도중 함께 심장적출식을 하러 간 친구 화리트가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공포에 떠는 륜에게 화리트는 본래 자신이 해야 하는 비밀 임무를 부탁합니다. 그것은 북부인 일행을 만나 인간들의 대사원으로 가서나가 사회에서 벌어지는 모종의 음모를 함께 저지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륜 페이는 화리트를 죽였다는 누명을 뒤집어쓰게 되고, 반은 도망 반은 비밀 임무를 위한 여행으로 북부를 향한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같은 시각 북부에서는, 용맹한 아라짓 전사와 키탈저 사냥꾼의 마지막 후예 케이건 드라카, 도깨비 성주의 몸종인 유쾌한 성격의 비형 스라블, 7미터짜리 철창을 젓가락 다루듯 하는 거대한 닭인간 종족인 레콘의 전사 티나한이 자신들의 나가 협력자를 데리러 가기 위해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대사원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죠. 북부 종족들에게 적대적인 나가 정찰대를 피해 가며 남쪽 한계선을 넘어 나가들의 영토에서 그들은 친구의 의무를 대신하러 온 자, 륜 페이를 만나 대사원으로 떠납니다. 자신들의, 그리고 대륙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채로…

놓치지 않는 섬세함과 아름다움


제가 이 책을 다 읽고 든 생각은 ‘나는 왜 눈물을 마시는 새를 이제야 읽었는가’였습니다. 눈물을 마시는 새는 거대한 스케일뿐 아니라 세밀한 캐릭터 묘사, 미려한 문학적 표현, 동양적이면서도 동시에 환상적인 배경과 이야기로 독자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이렇게 멋진 이야기이기 때문에 눈물을 마시는 새가 그 수많은 독자, 특히 젊은 남자 독자들을 열광하게 만들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양판소에서 볼 수 없는 문학성이었습니다. 양산형 판타지 소설, 소위 양판소라는 것들에 실은 이 눈물을 마시는 새를 따라한 아류작들이 많은 것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문장 곳곳에 숨어 있는 위트, 해학, 시적인 표현들은 감히 따라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이 아름다운 문장들을 사용하여 하나의 거대한 세계, 커다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세계관의 웅장함을 잃지 않으며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눈물을 마시는 새가 가진 대단한 점이라 하겠습니다.

J.R.R 톨킨에게 드워프, 엘프, 오크 등이 있다면 이영도에게는 도깨비, 레콘, 나가가 있습니다. 톨킨 같은 대문호에 저는 감히 견줄 만한 작품을 이영도 작가는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이나 자세하고 섬세하게 종족, 대륙, 각 인물들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 바로 눈물을 마시는 새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도깨비를 재해석하여 위트 있고 유쾌한 종족을 만들어 냈습니다. 감히 대적할 수 없는 거한 종족 레콘을 단순히 거인이 아닌 닭인간으로 만든 것은 색다른 재미를 주었습니다. 나가 종족의 경우 북부의 인간, 도깨비, 레콘과는 전혀 다른 모계사회, 더운 기후에만 살 수 있는 등의 특징을 주어 섞이기 어려운 근본적인 차이를 묘사했습니다. 이처럼 세세한 세계 묘사를 통해 독자는 마치 눈으로 보는 듯한 생생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웅장한 세계, 아름다운 표현, 매력적인 캐릭터, 환상적인 이야기까지. 한국 판타지 소설의 완벽한 표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눈물을 마시는 새. 책으로도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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