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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깊고 넓은 세상, 텍스트 – 복음과 상황 12월호

보라돌이입니다 2021. 12. 2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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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복음과 상황은 창간 30주년 특별호로 나왔다. 제목은 텍스트와 세계’. 성인 한 사람이 일년에 한 권도 책을 읽지 않는 대한민국에서(도대체 대형서점에서 보이는 그 수많은 사람들은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더군다나 점차 사양산업화 되어가는 잡지 산업의 파도 속에서 30주년이 되었다는 것이 참 의미 있는 일이다. 이렇듯 의미 있는 창간 30주년 기념호의 주제가 텍스트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기독교는 텍스트의 종교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셨다. 유대교의 교육은 모세 5경을 포함한 구약의 율법을 달달 외우는 것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바울, 누가와 같은 잘 교육된 이들의 글을 통해 로마 제국의 곳곳으로 퍼졌다. 라틴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독점하던 교황청에 맞서 마르틴 루터는 독일어 성경을 펴냈다. 그렇게 성경은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처럼 기독교는 텍스트로 시작되어서 텍스트로 성장했다. 복음과 상황이 텍스트를 다루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텍스트의 깊이와 넓이

 

복음과 상황의 초대 발행인이자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선생의 텍스트 이야기로 12월 복음과 상황의 문을 열었다. 군부에 의해 교수직을 해직당한 서슬 퍼런 80년대에도, 민주화의 열망과 복음과 상황의 태동이 함께하던 90년대에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일하던 2000년대에도 이어지는, 한국 기독교 역사의 텍스트를 모으기 위해 이만열 선생이 동분서주한 이야기는 학자의 자료 수집을 위한 노력 정도가 아니라 흡사 영웅담처럼 느껴진다. 수십년간 텍스트를 수집해 온 노학자의 지식과 인격의 깊이가 그가 쌓아 온 텍스트만큼이나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만열 선생을 통해 텍스트의 깊이를 느끼고, 이어지는 커버스토리와 기획기사들은 텍스트가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준다. 출판사의 대표와 편집장, 책방지기, 북큐레이터, 그리고 웹툰 작가 부부까지, 다양한 형태의 텍스트와 그 텍스트를 다루는 사람들을 소개한다. 으레 텍스트를 생각하면 그 텍스트를 쓴 작가를 먼저 떠올리게 되지만, 그 텍스트가 세상에 나와서 누군가에게 전달되기까지 거쳐 오는 과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커버스토리 뒤로는 2030부터 5070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복음과 상황 독자들을 만난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대학생, 마을 활동가, 신학대학원생, 국회 비서, 30년째 복음과 상황을 구독한 노의사와 원로목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복음과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오늘날 세대로, 성별로, 다양한 삶의 양태로 단절되어 있는 사람들을 엮어주는 것 같아 기쁘게 읽었다. 내용도 알차고 좋았지만, 그보다는 내용이다양한것이 갈라쳐진 한국사회를 복음으로, 텍스트로 엮어낼 힘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아 보기 좋은 이번 호였다.

 

30년간 힘있는 기사로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복음과 상황. 시대를 뛰어넘는 예수님의 복음과, 시대를 관통하는 상황을 모두 아우르는 좋은 글과 기사들을 앞으로도 계속 발굴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냥 교회를 다니는 것으로는 보기 어려운 깊이와 넓이를 가진 세상을 보여주는 잡지이기 때문에, 한국 기독교에 보물과 같은 책, 복음과 상황의 30주년을 축하하며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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