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책] 이해할 수 없는 타인 –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오빠 강민호

보라돌이입니다 2019. 2. 11.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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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단편집

 

이 책은 이기호 작가의 단편집이다. 그래서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이해할 수 없는 등장인물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친절한 교회오빠의 호의는 상대방의 눈물로 돌아왔고 아내의 바람을 참아낸 남편에게 돌아온 것은 아내가 휘두른 공구에 머리를 맞아 사망하는 최후였다. 교도소에 간 아내의 오빠가 맡긴 딸에게 친절히 대해 준 소설가는 학교폭력을 저지르고도 뻔뻔스러운 아이의 행동에 대해 충동적으로 험한 말을 내뱉었고 그에게 남은 것은 부끄러움과 괴로움 뿐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란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이야기

 

다행히도 이 책의 맨 뒤에는 철학자 김형중 선생이 쓴 해설이 있다. 이 해설을 읽고서야 나는, 이것이 작가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의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철학자는 이 이야기들에서 환대를 끌어냈다. 교회오빠의 친절, 남편의 인내, 소설가의 아이에 대한 애정과 그에게 남은 괴로움은 모두 그들이 환대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환대는 우리 사회의 규칙,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환대하는 자의 마음, 그리고 환대받는 자의 부끄러운 마음 등으로 인해 완벽한 환대가 되지 못한다.

 

우리 사회의 규칙에 대해서는 별 하고싶은 이야기가 없다. 우리는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까지 남을 환대하지는 못하는 인간이다. 모두가 그렇다. 그러나 전해지지 않는 마음과 전할 수 없는 부끄러움은 조금 다룰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선의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선의로 행동한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에도 선의는 상처가 된다. 사람은 참 상처나기 쉬운 동물. 마음이란 그렇게도 웃기는 것이리라.

 

우리는 왜 선의를 주고받으며 상처도 같이 주고받는가? 철학자는 언어의 불완전성을 이야기했다. 누군가의 언어는 타인에게 완벽하게 이해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네가 아니기에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 내가 아니기에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너, 그 사이의 문제라는 것. 그것은 인간 사이에 도도하게 흐르는 AT필드. 누구도 깨지 못하고, 깨서도 안 되는 자아. ‘로 살게 하는 힘이자 가 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다.

 

완전한 환대, 완전한 이해는 결국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우리는 결국 상처를 주고받는다. 이 상처를 딛고 나가는 것도 중요할 테지만, 이 상처 자체를 곰곰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라는 인간의 유한함을 고개 주억거리며 인정하는 것도 좋으리라. 아니, 그래야 하리라.

 

흡인력 있는 전개, 당황스러운 끝

 

최고의 스포츠 만화로 평가받는 슬램덩크의 주인공 강백호는 농구 입문 4개월짜리 초짜이지만 성장세만큼은 최고다. 만화 연재 중간중간, 작가는 이 강백호가 앞으로 먼 훗날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룬다, 지금의 이 훈련이 그 밑거름이 된다 는 식의 멘트를 깔아 놓았다. 이 멘트들로 인해 훗날 독자들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만화의 엔딩 뒤에도 강백호는 농구선수로서 성장하고 있으리라 믿었고, 지금도 믿고 있다. 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 단편집에도 이같은 작가의 멘트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그러나 나의 이 행동 또는 생각 또는 마음을 후회하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와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독자는 단편 하나를 통째로 읽지 않으면 배기지 못한다. 왜냐하면 다음 내용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 무슨 일이 있길래? 앞으로 어떻게 되길래? 하면서 우리는 이기호 작가가 깔아 놓은 이야기의 트랩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야기 하나를 다 읽어도, 우리는 등장인물의 심리와 행동을 다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럴 수밖에. 나는 강민호도, 김숙희도, 한정희도, 이기호도 아닌 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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