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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X책] 자유란 어떻게 얻어지는가? – 엑스맨 2 X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보라돌이입니다 2016. 3. 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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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라는 이 작품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출세작이자 불세출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이 작품을 통해 소련 사회의 부조리함과 강제 수용소의 고통스러운 생활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이 작품은 솔제니친 자신의 수용소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수용소에서 솔제니친은, 인간성이 압살되고 자유가 없어진 사회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수용소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는 비록 엄혹한 추위, 혹독한 간수들, 약삭빠르기도 하고 어수룩하기도 한 동료들 사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행복을 이어간다. 수용소에 들어오기 이전의 삶을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현재 주어지는 작은 행복들에 만족한다. 이를테면 손에 익은 공사 도구,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잘 막힌 작은 공간, 간수에게 들키지 않게 들여 온 줄칼 등이 그런 작은 행복거리이다. 그는 수용소에 잘 적응했다고 말할 수 있다.

수용소는 자유를 억압하는 곳이다. 그곳에는 어떤 자유도 없다. 그곳은 철저한 계급 사회이다. 간수, 노동반장, 노동반원으로 나뉘어 있다. 반원들 사이에서도 출신, 적응력, 가족의 뒤 배경 같은 것들로 인해 차이들이 있다. 그런 곳에서 이반 데니소비치는 살아간다. 어떤 사유물도 허락되지 않는 그곳에서, 그가 몰래 들여 온 줄칼과 주머니에 몰래 넣어 놓은 빵은 일종의 일탈이자 자유이다. 이반 데니소비치가 얻은 자유는 적응의 산물이다.

우리는 역사책에서 종종 자유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위해 목숨을 잃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독립운동, 4.19 혁명, 5.18 민주항쟁, 6월 항쟁과 같은 역사를 볼 때, 우리는 자유를 위한 투쟁이 얼마나 숭고하고 값진 것인지를 배운다. 사회의 구조가 불합리하고 억압적일 때, 그에 맞서는 싸움이 어떻게 자유를 가져다 주었는지 배울 수 있다. 우리에게 자유란 으레 그런 것이다. 적응을 통한 소시민적 자유는 오히려 지양해야 하는 것으로 우리는 배운다. 김수영이 사령에서 자조했듯이, 외치지 못하는 자유는 죽은 영혼과 같은 것이라고 우리는 배운다.

그런 면에서 엑스맨 2에서 보여주는 매그니토의 행동은 위인전에 실릴 만큼 위대하다. 그는 돌연변이에게 억압적인 그 체제를 탈출했다. 모든 돌연변이를 죽이려는 인간들을 막아냈다. 심지어 폭압적인 사회 시스템을 전복하기 위해 돌연변이 천국을 만들고자 했다. 그는 돌연변이 자유의 상징이다. 돌연변이 자유의 투사이자 살아있는 증거이자 깃발이다. 이반 데니소비치와 같은 많은 소시민적 돌연변이들은 매그니토를 보라! 그를 따르라! 세상을 뒤집어버리자!

그러나 매그니토의 맞은편에서, 찰스 자비에 교수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싸워서는 안 된다,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인간과 돌연변이는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분명 돌연변이들의 자유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링컨 대통령의 초상화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되어 힘을 실어 준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조화와 화해를 위해 노력했던 링컨처럼, 자비에 교수는 인간과 돌연변이의 화해를 추구했다.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 간섭하지 않음으로서 얻어지는 자유. 그것은 민주 사회의 이상과 같은 것이다. 찰스는 그것을 추구했고, 거기에는 희생이 필요했다.

이로서, 우리는 자유에 대한 세 가지 다른 관점들을 나열했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소시민적 자유를, 매그니토는 싸워 쟁취하는 자유를, 자비에 교수는 가장 이상적인 자유를 주장했다. 이 모든 자유는 자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자유는 서로 상충한다. , 무엇이 자유일까? 상충하는 이 자유들은 무엇일까? 어떤 것은 자유이고 다른 것들은 그렇지 않을까? 각자의 상충하는 자유. 그 자유들 속에 우리는 살아간다. 누군가는 절대적 자유에 가까운 것을 누리며, 또 누군가는 그저 주어진 작은 자유 속에 안주하여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 자유의 답답함에 못 이겨 싸우기도 한다. 이 모든 자유의 공통점은, 그 각각의 자유를 얻기 위한 대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안주이든, 투쟁이든, 혹은 희생이든.

지금 나의 자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나는 내게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얻었는가? 나는 이 자유에 만족스러운가? 지금보다 더 큰 자유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자유를 위한 더 큰 대가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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