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기/일상, 생각

나의 전세 재계약기(2)

보라돌이입니다 2016. 3. 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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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저는 단골 부동산이 있었고, 그 곳에서 친절히 안내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부동산이 친절한 것과는 별개로, 오늘날 부동산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부동산에 저의 상황과 조건을 말씀드렸습니다. 부동산의 대답은 한결같았습니다. 전세가 물량이 없다. 그래도 한 번 알아보겠다. 최선을 다하겠다. 요새는 월세가 대세다. 뉴스에서 말로만 글로만 보고 듣던 것과 체감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정말 전세 시장은 말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전세는 나오지 않고, 저는 초조했습니다. 집 주인 할머니는 자꾸 전화해서 언제 나갈거냐 독촉하고, 정작 기다리는 부동산의 전화는 오지 않았습니다.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부동산에 찾아갔습니다. 


부: 아 어서오세요. 전세가 많이 없네...

나: 어... 아예 없나요?

부: 응... 아예 없어... 1억 전세는 집 주인들이 내놓지를 않아... 대신 반전세는 몇 개 있는데. 


없다니. 눈만 들면 보이는 이 많은 건물들 중에 내가 들어가 살 수 있는 집이 단 한 채도 없다니... 절망적이었습니다. 동시에 황당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었고, 저는 그 현실에서 차선이라도 구해야 했습니다. 부동산이 권한 반전세. 전세 1억에 매달 15만원씩의 월세. 그것이 저의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부동산 사장님께 그거라도 보여달라고 말씀드렸고, 그 길로 저는 두 채 나와 있다는 반전세를 보러 갔습니다. 

첫번째 집. 외관부터 비주얼 쇼크였습니다. 제가 기존에 살고 있던 빌라는 지어진 지 30년 가까이 된 낡은 건물입니다. 빨간 벽돌로 지어졌고, 많이 낡았지만 그나마 깔끔하게 생겼습니다. 그런데... 첫번째 본 반전세 집은 한마디로 더러웠습니다. 족히 50년은 연식이 되어 보이는 허름한 외관, 곳곳에 페인트가 떨어져 나가 회색 콘크리트가 보이는 외벽, 쓰레기들이 널려 있는 바깥 모습까지, 다채로운 충격을 주는 3층짜리 빌라였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한시가 급했기 때문에, 저는 들어가 보기로 했습니다. 세상에, 3층짜리 건물인데도 계단에는 조명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두컴컴해서 보이지 않는 계단을 핸드폰 조명에 의지해 올라가 집에 들어갔습니다. 집 자체는 최근에 고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건물 자체가 오래된 건물이라 집의 구조가 생활하기에 약간 불편해 보였습니다. 저는 미련 없이 다음 집으로 향했습니다. 

두번째 집. 놀랍게도 그 집은 단독주택이었습니다. 꼬불꼬불한 골목을 돌고 돌고 또 돌아 찾은 집이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자, 엄청나게 넓은 집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낡았고, 구조가 불편해 보였습니다. 좁은 마당은 시멘트로 덮여 있었습니다. 저는 부동산 사장님을 따라 말없이 집 현관을 들어갔습니다. 역시 집은 넓었습니다. 현관을 들어서자 널찍한 거실 겸 주방이 나왔습니다. 족히 열댓명은 둘러앉을 수 있는 넓이였습니다. MT 갈 때 주로 찾는 펜션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방은 무려 네 개. 각 방은 크기가 균일하고, 깨끗했습니다. 아니, 깨끗했다기보다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들어간 방에는 집 주인 할아버지가 티비를 보고 계셨습니다. 난방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한 할아버지는 작은 온수매트와 전기난로에 의지해 추위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럴 만 하지요. 집은 넓고 할아버지는 혼자 사는데 난방비를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저는 다시 그 집을 나왔습니다. 냉난방비 부담. 그것은 저에게도 큰 부담이었기에 그 집을 선택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 있던 단 두 개의 옵션이 사라졌습니다. 둘 다 선택할 수가 없었습니다. 내집마련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혈안이 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허탈했고,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채 턱을 얻어맞은 복서처럼 힘이 탁 풀려버렸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 동생에게 말했습니다. "야, 우리 큰일났다..." 아무 데도 갈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그때, 새로운 기회가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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