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이기/일상, 생각

나의 전세 재계약기(3)

보라돌이입니다 2016. 3. 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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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갈 수 있는 집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저는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집도 알아 보지 않았습니다. 부동산도 더 이상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만사가 귀찮았습니다. 월세라도 알아봐야 하나... 다달이 나가는 월세금은 어떻게 내야 하나... 내가 취업만 되었어도 월세금 걱정은 하지 않았을 텐데... 아니, 취업이 되었어도 월세금은 꽤 부담스러운 것이었겠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바로 그렇게, 낙담하고 있는 제게 무려 집주인 할머니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습니다. 저는 '아 집이 팔린 건가...'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의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할: 어... 총각 잘 있었어? 나갈 집은 구했고?

나: 아뇨 아직이요... 집은 사신다는 분이 있나요?

할: 어... 글쎄... 

나: ???

할: 총각 혹시, 그 집에 그냥 월세 좀 얹어서 살 생각 없어?


의외의 한 마디. 저는 당황했습니다. 동시에, 이게 웬 떡인가 싶었습니다. 저는 덥석 물었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할머니와 저는 10만원 월세를 더 내는 선에서 재계약을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기뻤습니다. 살 집이 생겼다!! 라는 안도감이 확 몰려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의외의 곳에서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부모님이 반대를 하신 것입니다. 그 낡아빠진 집에 월세를 10만원씩 따박따박 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저는 할 수 없이 부모님의 허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시간은 점점 흘러만 갔습니다. 저는 초조해졌지요. 할머니가 변심하시면 어떡하나... 집을 산다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그렇게 초조한 마음으로 가는 시간을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부모님도 입장이 확고하셨죠. 

그러던 도중, 할머니께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두근거림을 진정하며 전화를 받았죠. 그랬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할: 총각? 그 집 계약은 아직 안 정해진거야?

나: 어... 글쎄요. 월세가 갑자기 없다가 생기니까 약간 부담스러워서요.

할: 그러면... 월세... 내지 말고 그냥 살래? 전세로 재계약하고. 

나: ??????


세상에... 저는 쫒겨날 위기에 몰린 세입자에서 칼자루를 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원하면 이 집에 계속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저는 부모님께 이 일을 전화로 말씀드렸고, 그 당장에 전세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그 어렵다는 전세를 아무 부담 없이 재계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전세 재계약을 할 수 있었을까요? 왜 할머니는 저를 계속 살 수 있게 해 주신 걸까요?? 답은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집을 여러 채 가진 부자입니다. 그렇지만, 할머니에게는 세입자인 제가 계약을 끝내고 나갈 때 돌려줄 보증금, 즉 현금이 없었던 것이지요. 현금이 없는 할머니는 집을 팔아 현금을 마련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인구는 계속 줄고, 그렇다고 새 건물을 짓지 않는 것도 아니고, 집값은 계속 떨어질 전망입니다. 그러니 이런 낡은 빌라가 팔릴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월세로 내놓는 것도 수요가 얼마 없어 마뜩찮았던 것이지요. 그러니, 할머니가 제게 현금을 돌려 주지 않을 방법은 제가 재계약을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부자이지만, 일종의 '하우스 푸어'였습니다. 부동산은 있지만, 그 부동산이 현금화가 쉽게 되거나, 계속 가치가 오르지 않으면, 할머니는 금방 가난해 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이와 같은 부동산 부자들이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분들을 잘 관리해주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떨어질 부동산 가격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가난해 질 것입니다. 그 피해는 부동산 주인들 뿐 아니라 세입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겠지요. 멀리 내다보는 부동산 정책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전세 재계약기였습니다. 세입자도, 건물주도 함께 잘 살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겠습니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보아서도, 일방적으로 이익을 보아서도 안 됩니다. 지금 당장은 조물주보다 건물주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 작은 땅덩이 안에서, 나만 위하는 것이 아닌 서로 함께 사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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