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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X책] 쿼바디스 X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

보라돌이입니다 2016. 2. 28.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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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어디로 가는가. 영화 '쿼바디스'의 주제 질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와 같은 질문을 하고 싶고,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의 문제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저 먼 별나라의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주변의 수많은 기독인들이 자기가 다니는 교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교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묻는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시퍼렇게 두 눈을 뜨고 우리를 마주 보고 있다. 그렇기에, 질문을 받은 나도 내 자신에게 묻는다. 하나님에게 묻는다. 교역자에게 묻는다. 교회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우리는,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영화는 말한다. 교회는 이미 자정의 기능을 상실했다(권연경 교수). 교회가 이렇게까지 된 것은 목회자의 책임이 크며(옥한흠 목사), 교회와 기독교 문제에 책임이 있는 목회자들은 교회를 자신들이 일구어 놓은 기업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김홍도 목사). 또 그러한 목회자들은 자기 자신을 선(善)으로,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악(惡)으로 규정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악을 비난한다(조용기 목사, 전병욱 목사). 


교회란 무엇일까? 교회는 목회자일까? 그렇지 않다. 교회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는 이들의 모임이 교회다. 그렇기에 교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예수를 믿는 이들, 즉 성도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책 '가나안 성도, 교회 밖 신앙'에 의하면, 신앙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신앙을 위해 '교회 밖'으로 가고 있다. 교회에서 오랫동안 봉사하고, 교회를 특별히 많이 옮겨다닌 교회 쇼핑족도 아닌 이들이 교회를 떠나 밖으로 밖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36, 37쪽). 교회는 이 사람들의 신앙의 성숙이나 성장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교회 안에서 만난 이들이 이들 '가나안 성도'의 신앙생활을 방해한 것으로 조사되었다(38쪽). 예수를 믿고 싶어서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 이들에게 과연 한국교회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나타나는 가나안 성도에게는 분명한 방향성이 있다. 예수님의 삶과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이들의 분명한 방향성이다. 그것을 원하는 이들에게, 교회란 성경 중심적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던 것이다. 책에 예시로 나오는 가나안 성도들은 자신들의 교회 밖의 신앙생활에 만족하며, 교회로 돌아갈 필요성 혹은 돌아가고 싶은 의향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28-30쪽). 왜일까? 영화가 주는 답은 이러하다. 교회가 예수를 따라 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교회는 스스로 예수를 따르고 있다고 말하면서, 정작 실제로는 무엇을 따르는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수를 향하는 방향성을 가진 이들은 더이상 교회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참 못났다. 사람에게 미안한 것, 하나님께 죄송한 것 부지기수다. 그렇기에, 때마다 조아린다. 사람에게도 사과하고, 성경 앞에, 나의 경외의 대상인 예수님의 말씀 앞에 무릎걸음으로 다가간다. 앞으로의 시간에도 나는 많이 잘못할 것이다. 그 때에도, 나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탕자의 마음으로 달려오시는 아버지 앞으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부끄러움과 아픈 마음으로 정직하게 다른 이들에게 고개 숙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나의 부끄러운 것들이 떠올라 글을 적다가 고개를 떨군다. 조금씩 조금씩 예수님 따르는 방향으로 살게 되기를 나 자신에게 간절히 바란다. 스스로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반성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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