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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의 힘 – 기생충

보라돌이입니다 2019. 6. 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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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신작이나 이번 칸 국제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영화 기생충. 개인적으로 올 상반기 어벤저스 엔드게임보다 이 영화를 더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개봉한 날 밤에 바로 봤습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이야기, 연기, 메시지였습니다.

 

코미디에서 스릴러로

 

4인 전원 백수인 기택네 가족의 장남 기우가 친구의 소개로 성공한 사업가의 딸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고액과외 선생님이 됩니다. 기우는 자기 뿐 아니라 동생, 아버지, 어머니까지 몽땅 이 집에 취업을 시킵니다. 여기까지가 시놉시스와 예고편에서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이 영화는 여기까지는 코미디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단 한 장면으로 인해, 이 영화는 스릴러가 됩니다. 그 한 장면에 저는 얼얼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환의 힘, 강렬한 충격, 한 순간에 분위기를 바꾸고 또 그 분위기를 이어가 결국 클라이막스로 관객을 이끄는 것은 결국 이 한 장면으로 인해 가능합니다.

 

이야기의 힘은 이 영화의 모든 것을 이끌고 갑니다. 영화의 미장센도, 배우들의 연기의 디테일도 전부 이야기에서 나옵니다. 이야기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배우들의 연기와 미장센과 대화가 이야기를 부연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이야기는 더 힘을 얻고, 힘을 얻은 이야기는 더더욱 연기와 미장센에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스포일러 주의)

 

기우는 여러 신에서 네발로 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동물의 그것보다 벌레, 특히 곱등이의 그것과 흡사합니다. 기택은 충숙으로부터 바퀴벌레 같다는 말을 듣는데, 이후 박 사장 가족이 들어오자 기택은 정말로 바퀴벌레처럼 테이블 밑으로 사사삭 들어갑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기정과 기우가 변기에 앉아 사이좋게 와이파이를 잡지만, 중반부에는 기정 혼자 변기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기우 혼자 변기에 앉아 뉴스를 봅니다. 이 모든 것은 연기와 연출은 모두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이야기가 각 신과 연기에 힘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권력이 주는 허위의식

 

돈과 권력이 주는 허위의식에 취하는 일반적인 부자 가족과 달리, 박 사장네 가족은 그렇게 오만하거나 콧대가 높다거나 하는 모습을 대놓고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두 부부만 있는 시간이 오자, 그들은 자기들의 허위의식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그러나 저는 그 장면이 부자들의 허위의식을 드러내기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인간이란 당연히 저 정도는 하지 않나 라는 생각. 부부끼리 있으면 당연히 다른 사람 흉도 보고 자기 안의 깊은 욕구도 서로 드러내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박 사장은 아내 연우에게 김 기사, 즉 기택에 대해 이야기하며 선을 넘을듯 말듯 넘지 않지만, 그 특유의 냄새는 늘 선을 넘어온다고 말합니다. 그 냄새에 대해 기정은 반지하 냄새, 박 사장은 지하철 타는 사람들 냄새라고 부릅니다. 일상의 냄새가 부유한 그들에게는 역하게 느껴진 것입니다. 그러나 박 사장은 기정이 벗어 놓은 팬티를 입어 줄 것을 아내에게 요구합니다. 그 싸구려 팬티를 입으면 자기가 더 흥분할 것 같다고 합니다. 결국 박 사장은 자기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적으로 흥분하게 하는 묘한 어떤 심리가 있는 것이지요.

 

오히려 기택네 가족이 저택의 비밀을 알아낸 바로 그 시점에, 권력이 주는 오만함에 취해버리는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줍니다. 자기들보다 약자에게 자비롭거나 연대하기보다 자기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휘둘러 약자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사건으로 위치가 역전되자, 이들은 살아남고자 추악하고 비굴하게 변합니다. 권력의 상하관계와 이를 통한 허위의식의 표현은 기택네 가족이 오히려 박 사장네 가족보다 더 한 것이지요.

 

권력의 상하관계, 배우들의 연기, 미장센. 이 모든 것을 하나로 꿰어 낸 것은 이 영화의 이야기의 힘입니다. 촘촘한 서사와 장면의 배치를 통해 이 영화는 복잡하지만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내뿜는 이 이야기가 말이 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야기의 재미는 덤입니다. 천재 이야기꾼 봉준호의 또 다른 이야기, 기생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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