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 내내 기대했다. 얼마 전에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도 받았다기에 더 기대했다. 마침내 개봉했고, 개봉하자마자 심야영화로 보고 이제 감상을 적는다. 영화 ‘조커’에 대한 이야기다.
조커는 개봉 전부터 숱한 이야기들을 끌고 다녔다. 미국에서는 총기와 맞물려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대체 이 영화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이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기에 이렇게 화제가 되는가?
폭력에 관한 이야기
후에 조커가 되는 아서 플렉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랐다. ‘남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어머니는 그를 ‘해피’라는 별명으로 부른다. 아서도 그 뜻을 이어받아 코미디언이 되기를 꿈꾸며 거리의 광대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 매우 냉담하다. 냉담을 넘어서 많은 이들은 그를 괴롭힌다. 거리의 불량배들, 직장동료, 사장, 나아가 그의 우상인 티비쇼 진행자마저 그를 괴롭힌다. 그는 폭력의 피해자다.
그런데 지하철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모든 것이 뒤바뀐다. 지하철에서 아서를 괴롭히던 세 명의 남자를 아서는 총으로 쏴 죽여버린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어서야 아서는 그가 죽인 자들이 시장 후보이자 대부호 토마스 웨인의 금융회사 직원들인 것을 알게 된다. 웨인을 비롯한 사람들은 폭력의 피해자인 그들을 추모하고 애도한다.
왜? 아서가 폭력의 피해자일 때는 그냥 웃고 넘어가거나 또 다른 폭력을 이어가던 이들이 왜 아서를 괴롭히던 놈들에 대해서는 추모하고 애도하는가? 토마스 웨인이 공개적으로 추모해서? 그들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어서? 왜? 이 질문을 가지게 된 것은 비단 아서만이 아니다. 수많은 억압받던 사람들이 아서처럼 광대 분장을 하거나 광대 가면을 쓰고 폭력 시위에 참여한다.
세계는 폭력적이다. 특히 소수자와 가난한 자에게 폭력적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적이다. 그러나 평소에 폭력의 가해자이던 기득권 세력이 폭력의 피해자가 되면 어떤가? 이상하리만큼 세상은 크고 중요한 이슈로 다룬다. 몇 년 전 빠리에서 테러가 일어나자 엄청난 추모 행렬이 일었다. 당시 중동에서는 전쟁으로 빠리에서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지만, 사람들은 중동보다 빠리에 집중했다. 영화 ‘조커’는 바로 이런 폭력에 대한 상대적인 대응을 여실히 보여준다.
질서에 관한 이야기
아서는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받았다. 친아버지라고 생각한 토마스 웨인은 아서가 눈앞에 나타나자 주먹을 날려버렸다. 아서가 좋아하던 같은 아파트의 싱글맘 소피는 아서의 망상 속에서만 그에게 잘 대해줬을 뿐 실제로는 대화 한번 없던 사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아서는 자신을 억누르던 어머니의 가르침, 망상증 등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의 부정적 감정을 광적으로 표출하게 된다. 조커가 탄생한 것이다.
조커가 된 아서는 자신의 우상인 머레이의 티비쇼에 출연해 자신이 세 명의 금융쟁이를 죽였음을 고백하고 자신의 억눌린 마음과 생각을 드러낸 후 머레이를 쏘아 죽인다. 그리고 경찰에 잡혀가는 그를 수많은 광대 차림의 시위대가 구해내고 아서는 경찰차 위에 벌떡 일어나 시위대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다. 그리고 시위대 중 한 명은 시위를 피해 도망치는 토마스 웨인과 그 부인을 쏘아 죽인다.
원래 바닥에 쓰러지는 것은 아서와 같은 광대, 마이너리티들이었다. 두들겨맞고, 괴롭힘을 당했다. 그리고 무시당했다. 시장 후보로 열렬한 지지를 받던 토마스 웨인은 티비에 출연해서 광대 차림의 살인자를 패배자, 열등한 자라고 평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어떤가? 누가 바닥에 누워서 무시당하는가? 시체가 된 토마스 웨인이다. 그리고 누가 환호에 둘러싸여 있는가? 늘 바닥에 쓰러져 있던 아서, 조커다.
그 누구도 아서가 바닥에 쓰러질 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는 그 질서의 하층에 있었으니까.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질서가 바뀌고 메이저와 마이너가 뒤바뀌었을 때, 무관심의 대상은 토마스 웨인이 되었다. 이 세상은 질서의 하층이 어떤 폭력을 당하는지 관심이 없다. 이를 명확하게 보여준 영화가 바로 조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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