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의 굴욕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병자호란. 그 병자호란을 주제로 한 소설 ‘남한산성’. 후금의 장군 용골대가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자, 조선의 왕 인조와 신료들은 얼어붙은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을 합니다. 말이 항전이지, 성벽을 끼고 거의 버티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남한산성에서 왕을 둘러싼 신료들은 말을 하기 바쁩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왕의 명령을 성 밖으로 전하려 나선 대장장이에게는 ‘천한 것’이라고 하며 그가 공을 세울까 두려워합니다. 화친을 주장하는 최명길은 ‘오랑캐와 화친을 주장한다’며 죽이려 합니다. 그러면서 이들은 다양한 헛소리를 내놓습니다. 버티면 이긴다, 습격을 통해 이길 수 있다, 금수와 같은 여진족들에게는 예법으로 이긴다, 이런 소리들을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들과 정 반대의 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결국 조선은 청에 굴복하게 됩니다. 청의 황제에게 우리 임금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조아리는 신하의 예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말이 번지르르하던 수많은 신하들은 각자 살아남기 위해 또 다른 말들을 자아냈습니다. 그 수많은 말의 잔치에서 물러나 있던 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삼학사는 척화파를 대표해서 청으로 잡혀가버렸습니다. 김류 등 진짜 말만 많던 이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습니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주변의 상황과 환경이 변하면 정치인의 말과 행동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정지인들에게 일종의 신조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주변의 상황과 환경이란 무엇일까요? 이들이 말하는 환경과 상황의 변화란 결국 정치인 자신의 유불리 라고 생각합니다. 조건이 유리해지면 이렇게 말하고, 불리해지면 말을 바꾸는, 그리고 그런 정치인의 행동을 정당화해주는 말이 바로 이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 자기 유불리대로 말을 바꾸는 사람을 우리는 ‘기회주의자, 사기꾼’ 등으로 부릅니다. 정치인이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지 않나 합니다.
정치는 과연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처신을 바꾸는 기술을 의미할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임지지 못할 말들을 쏟아놓고 정작 책임져야 할 때 없어져버리는 남한산성의 신료들은 정치인이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말과 소신에 책임을 지는 삼학사를 닮은 이들이 진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정치 세태에서 책임 있는 진짜 정치인을 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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